취업 후기 1-취업 준비편

gradu

개요

단군 이래로 취업이 가장 어려운 때인 바로 지금, 운이 좋게도 졸업 이전에 취업을 끝마치고 HR(Human Resources)과 입사 일정 조율을 하면서 쉬고 있던 도중 문득 대학교 졸업취업 에 관한 경험담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본래 사람이란 나태한 동물 인지라… 집에서 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전날 아침에 조조 영화를 일부러 예매한 후, 보고 나서 더욱 심심할 때 즈음 카페에 나와서 몇 글자 적어본다.

대학교 입학, 고삐 풀린 망아지 1학년

물론 모두가 힘들게 대학교에 입학했겠지만, 나에게는 그 기억이 무척 강하게 남아있다. 왜냐하면 부모님 항상 나에게

“대학만 가라. 그때까지는 공부에 집중하고 대학 가면 네가 놀고 싶은 만큼 놀아라”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효자이므로 인하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정말 마음껏 놀았다. 늦게 들어오면 부모님이 걱정 하실까 봐 아예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집에 들어갔으며, 몸을 못 가눌 만큼 술을 진탕 먹고 집에 다 들어와 현관문에 엎어지며 입술이 찢어져 응급실에 실려갈만큼!!! 질령나게 놀아버렸다.

당연하게도 열심히 놀았던 만큼 성적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가장 장학금을 받기 쉽다던 1학년 1학기, 2학기 모두 평점이 채 3이 채 되지 못했다. 1학년 2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 지금 이 타이밍이 바로 군대로 도망갈 타이밍이란 걸 직감하고 바로 해군에 자원입대하게 되었다.

군생활

해군에서 고속정 을 타며 먹고, 자는 생활을 했었다. 항해하고 정박하는 특성상 통신실을 지키거나, 현문(배의 입구)에서 혼자 당직을 서는 시간이 매우 많았었다. 새벽 & 밤에 혼자서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혼자 멍때리는 시간”을 무척 많이 가졌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제대 후 하고 싶은 일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종이에 많이 끄적거렸던 것 같다.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당연하게도 스스로에 대해서 많은 고민도 해 보고, 제대해서는 1학년처럼 마냥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제대하게 되었다.

PS. 이 무렵, 우연히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주목받아 제1연평해전 15주년…승전 잇는 ‘서해 수호자’들 KBS에 인터뷰가 나가기도 했다.

제대 이후, 정신차린 2학년

제대하며 코딩이란 코딩은 다 까먹어 버리고 2학년 1학기로 빠르게 복학하게 되었다. 복학했을 무렵에는, 여자 동기들은 취준생이기도 하고 남자 동기들은 아직 군대에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같이 놀 사람도 많이 없었다. 시간이 없는 대학생이 혼자 술을 먹겠는가, 혼자 놀겠는가. 할 게 없으니 공부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군대버프를 받아서 2학년 1학기에는 성적 우수자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우연히 2학년 1학기에 친구와 웹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게 되었다. 전공 선택인 과목이라 듣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냥 코딩이 재밌어 보여서 수강하게 되었다. HTML5, CSS, Javascript, Apache, Tomcat, JSP 등을 배웠는데 혼자 개인 블로그를 만드는 것이 최종 프로젝트이자 한 학기에서 가장 큰 과제였다. 뭔가 계속 기능을 더 붙이고 싶어서 새벽까지 붙들고 기능을 추가하느라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많이 난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인터넷에서 멋쟁이사자처럼 의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비 전공자와 함께하는,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를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동아리 를 모토로 하는 동아리였는데 당시의 내 실력은 비전공자와 다름이 없었기에 무식하고 용감하게 지원하게 되었다.

복학 후 얼마나 심심했는지 멋쟁이사자처럼에서 Ruby On Rails를 가지고 공강시간에 혼밥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함께 밥을 먹는 프라이빗 소셜 다이닝 서비스 인하미식회 를 런칭하기도 했다. 서비스는 교내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면서 적지않은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으나 혼자 개발, 운영, CS, QA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지만 직접 서비스 출시를 통해 학교 수업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대외 활동, 그리고 질풍의 3학년

멋쟁이사자처럼을 시작으로, 대외활동에 재미를 붙이더니 3학년에는 수도권 대학생 디자이너, 개발자 IT 연합동아리NEXTERS를 거쳐서 도제식 멘토링을 해주고, 창업을 지원해주는 SW Maestro 활동도 하게되었다. 무언가 하나의 기점을 출발해서 연쇄적으로 이어진 듯이 동아리&활동을 찾고, 가입하고,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에CODE FOR INCHEON 이란 도시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활동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대외 동아리&활동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개발할 기회도 생겼고 자연스럽게 교육, 스마트시티, O2O등 의 도메인 지식에 대해서 접할 기회도 있어서 유익했다.

활동들이 쌓이다 보니, CODE FOR INCHEON에서 같이 활동하던 오거나이저 분이 운영하시는 스타트업인 Team Mondrian에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었다. 휴학했을때는 풀타임으로 일하고, 학교에 다니면서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본의 아니게 중고신입 같은 경력이 쌓이게 되었다.

3학년 때 가장 많이 기억에 나는 활동은 SW Maestro였다. 매달 나오는 지원금 100만원이 경제적 생활에 매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고, 현업에 종사하시는 멘토님의 실무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개발 외적으로도 프로젝트 리딩, 기획, 퍼블릭 스피킹, 방법론(애자일) 등에서도 배울 기회가 있었던 게 성장에 큰 밑거름이었다.

정리, 그리고 4학년

4학년이 되니, 1학년 때 말아먹었던 학점을 복구하느라 고생했던 게 생각난다. 1학년 과정을 들으면서 본의 아니게 양학을 해버렸고 학점을 3.5로 겨우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무렵 서버사이드, 그리고 AWS에 관심이 생겨서 AUSG활동을 하기도 했고, 서울에 가는 활동들에 지쳐서 집 주변인 인천에서 모임이 이뤄지는 경상&디자인&공학 연합 동아리 경디공 에서 전시, 강의들을 하면서 활동을 했다.

4학년엔 주로 개발보다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다듬는 작업들, 어딘가에 가서 발표하는 일들을 많이 진행했다. 졸업 전 내가 해왔던 결과물들을 재정비할 수 있고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한층 더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무리하며

그렇게 모든 활동과 대학생활이 끝나가는 시점인 4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 즈음, 남들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인턴 자리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좋은 기회로 Naver에 인턴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제 4학년 2학기를 맞이하지만 웹강을 하나 들으면서 졸업할 수 있는 학점을 갖춰놓았기 때문에 별 이변이 없는 한 무탈하게 졸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고록을 적으면서, 이력서를 수정할 때면 “과거에 나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당시엔 무척 힘들지는 않고 재미로 했었지만 그런 재미있는 활동들이 오늘의 나를 이룬 성장의 밑거름인 활동들인 것 같다.

글을 마무리 할 때 즈음, 내가 적는 다이어리에 이런 문장이 떠올라 이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하냐고 물을 것이고 나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낸 거냐고 물을 것이다.


Philographer
Written by@Phil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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